크리스토퍼 니만은 베를린 기반의 일러스트레이터다.
뉴요커 잡지 커버와 정기적인 칼럼 일러스트 작업을 많이 해온 성공한 작가이면서,
선데이 스케칭이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에게 더 유명해졌다. 선데이 스케칭은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을 하나 정해서
종이에 얹어놓고 그 사물이 만들어내는 형태를 포함하여 종이에 그림을 그린 후 사진 촬영을 해서 의도한대로 사물과 스케치가 일체화된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림 주제와 관련 없는 사물이어도 그리고자 하는 주제에 맞는 형상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됬다.
3~4년 전쯤 넷플릭스에 ‘Abstract' 다큐멘터리에도 나왔어서 재밌게 봤다. 그의 창작 프로세스를 밀착하여 보여주고 그의 그림 철학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거나, 일러스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꼭 보기를 추천하는 에피소드
유튜브에도 에피소드가 전체 공개돼있다
https://youtu.be/q_k8fVNzbGU
앱스트랙트에 나오는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을 보면 정말 멋짐 폭발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편, 사진가편, 구두디자이너편, 무대디자인 등 다 방면의 분야에서 최고의 사람들만 나오는데,
이런 분들을 보면 예술의 어느 분야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보다는 어떻게 자기 이야기를 풀것인가,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분야 자체가 굉장히 멋져 보인다. 하지만 패션이든, 일러스트든, 건축이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도구,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쌓고 오랜 경험을 통해 쌓인 내공을 기반으로 자신의 관점을 세상의 맥락에 맞게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패션, UX, 인테리어, 건축,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결국 한 가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자신의 내면을 최대치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에 도달하는 것은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누구나 처음부터 잘하진 않는다.
지금 정상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랜 수련의 시간을 걸어온 사람들이고, 계속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매체, 내가 나를 보여주기 위해 쓰는 언어를 개발하기 위해 충분한 고민과 시간을 들이지 못했다.
그림을 한동안 안그리다가 오랜만에 그리면 당연히 내 손에 그림그리는 근육이 둔해져있는 상태고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내 눈도 그렇게 날렵한 상태가 아니며, 주의깊게 관찰할 수 있는 집중력을 갖는데도 은근히 많은 에너지가 쌓이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그린 그림의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오만이고 게으름이다.
그리고 그게 두려워 그림을 그리는 걸 계속 미루게되기도 한다. 확실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림을 보면 더 그리고 싶은 욕구가 확 떨어진다.
하지만 내 자신의 그림을 판단하려는 그 마음을 잠재우고 그림을 잘 그리든 못그리든 내가 표현하려고 한게 뭐고, 어디를 강조하고 어디는 힘을 죽일지 생각하며 망한 그림에서부터 뭘 배우고 다음엔 다른 방식으로 그려보자라고 한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다음번에는 1%라도 좀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근육이 생기는 것 이다.
올해 목표중 하나가 수채화 잘 그리기였는데, 아직 갈길이 많이 멀다. 수채화는 다양한 표현기법이 있고, 작가들마다 수채화 화풍이 굉장히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수채화로 사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사실주의적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꽃이나 풀 등의 세밀화를 그릴 수도 있고,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여러 수채화들을 보다보면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이런 그림이다! 라고 생각이 드는 그림 스타일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크리스토퍼 니만의 여행 수채화 시리즈다. 그의 사이트에 가면 훨씬 더 많은 그림을 구경할 수 있다.
https://www.christophniemann.com/detail/new-travel-drawings-2022-copy/
이분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복잡한 대상을 굉장히 간결하게 축약하여 조화를 잘 이룬다.
색감에 있어서도 그렇고, 대상의 형태와 그림의 분위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디테일만을 표현하는 그의 스타일이 난 너무 좋다.
사실 모든 것을 다 표현하려는 시도는 많은 초보자들이 처음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있는 그대로 빈 종이를 채우는 것은 시간은 오래걸리더라도 전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보고 그릴게 명확히 있으니 테크닉만 있으면 그릴 수야 있다.
나도 스케치를 할 때 디테일에 더 눈이 가지, 전체의 분위기와 그림의 구조에 대해서는 잊게된다.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체의 구도와 명암이다. 구도와 명암이 처음부터 제대로 구상되지 않는다면 그 그림은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좋은 그림의 베이스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구도와 명암을 캐치하지 못하면 아무리 디테일한 표현력도 그림을 살릴 수 없다. 큰 뼈대 없는 디테일은 가구도 벽체도 없는 텅 빈 공간에 시계를 걸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구도와 명암, 이 기본기는 잘 그려진 그림을 수도 없이 많이 보고, 이 그림은 왜 디테일이 많아도 통합적으로 보이는지,
어디가 가장 강조되어 있는지, 어디가 밝고 어디는 어두운지, 원근법 표현법 등 분석하며 보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리고 보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실행에 옮겨 많은 연습을 해야한다.
이 노력이 사실 전공자나 업으로 하지 않는 이상 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핑계...).
하지만, 비현실적인 자신의 기대치를 확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수련한다고 생각하고 난 무조건 이 분야에서 그래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것이라는 생각으로, 핑계를 허용하지 않기로 하면, 못할 것도 없다. 나중에 더 시간이 지나 그때 꾸준히 연습 할걸, 그럼 지금은 훨씬 더 잘 하는 되었을텐데,, 라고 후회 할것이 분명한 분야라고 느껴진다면,
어떤 확신이 든다면 아무리 초보자여도, 아무리 지금 보잘 것 없는 실력이어도, 자신을 믿고 계속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미래의 내가 지금 나에게 감사할 일을 많이 만들어 놓는게 행복한 삶의 한 가지의 방식일 것 같다.
못하는 것이 안하는 것 보다 낫다. 안해버리면 영영 못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잘 못해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인풋의 퀄리티 (시간과 집중, 발전성 있는 연습)에 따라
엄청 잘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엄청 잘하지 않더라도, 시도하고 꾸준히 자신을 표현한 작업물들을 쌓아온 것만으로 엄청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잘하고 싶은 영역은 아직 조금 많지만 확실한 한가지는 그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그림 실력이 제자리 걸음이고 내 성에 찰만한 그림을 아직까지 많이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꾸준히 하지 못했는데, 내 안의 이너 크리틱 (inner critic)의 목소리를 줄이고, 잘하고 싶은 욕심, 유명한 크리에이터가 되고자하는 그런 사회적 기준을 전부 내려놓고 그저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매일 하면서 더 잘하기 위해 좀 더 많이 그리고 좀 더 노력하는 사람, 그냥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에게 꼭 보여줘야만 가치 있는 활동이 아니다.
물론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실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인데도 조급해하며 공유를 너무 자주하고 다른 사람들의 그림체를 따라하면서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것은 사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카피한 그림실력은 티가 난다. 그리고 카피는 자신이 고민한 표현 기법이 아니기 때문에 무늬만 따라그리는 건 쉽다.
내가 세상에 공유하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를 잘 다듬고 내 가치관을 소통한다는 생각으로 창작하면 참 행복한 창작생활이 될 것 같다. 아, 그림 잘 그리고 싶다.
크리스토퍼 니만의 수채화 그림은 기분이 좋다. 색감도 굉장히 강렬하기도 하지만 강약을 확실히 두어 그림에서 힘이 느껴지고 깊이감이 느껴진다.
복잡해보이는 장면도 그의 특유의 쉬워보이는 그림체로 최소한의 붓터치로 전체의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이런 그림체를 따라해보면 절대 쉬운 방법은 아니다.
물감과 물의 양 조절을 엄청 잘해야하고, 붓을 절대 여러번 덧칠하는 방식도 아니다.
그의 수채화에는 많은 색이 들어가지 않는다. 2~3가지의 계열로 미니멀한 팔레트로 그리는게 특징이며 그게 너무 맘에 든다.
스페인 코르도바의 메즈키타 (Mezquita) 사원은 나도 여행 중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장식이 매우 화려한 곳이고 디테일이 장난 아닌데, 그 공간을 이렇게 매력적으로 심플하게 표현했다는게 너무 대단했다.
좋은 그림은 무엇을 빼고 무엇을 그릴 것인지 기획하는 것이 정말 중요함을 느낀다.
이 그림도 엄청 복잡하게 그릴게 많은 장면인데, 팔레트를 대비되는 색상으로 2-3개를 사용하고 표현을 최대한 간결하게 해서 전혀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복잡한 성당 내부를 그리라고 하면, 엄청난 디테일에 압도되어 그릴 엄두를 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그림을 보면 디테일 하나하나는 전부 뺐고 성당의 구조를 나타내는 핵심적인 부분만 굵은 붓터치와 진한 색상으로 강조했고 나머지는 거의 붓으로 살짝 살짝 터치만했다. 그런데도 전체를 보면 딱 성당이구나, 라는게 느껴진다.
사물과 공간의 본질을 읽어내는 눈을 가지도록 이미 엄청난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 그림의 경우, 나무바닥. 표면에 비쳐진 창가에서 들어온 빛이다. 빛을 물감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았고, 빛을 둘러싼 나뭇바닥들을 네거티브 스페이스로 빛의 모양을 남겨두었다. 나머지는 한번의 붓터치를 수직, 수평 방향으로 벽과 액자들, 창문을 최소한의 표현으로 그려냈다.
근데 그림이 엄청난 분위기를 가진다. 따라하기도 힘든 그림체다..
파리.. 파리..!!
트래블 드로잉 시리즈의 여러 도시 중 서울 그림도 있었다!
서울 이태원을 그리셨다는데, 딱 이태원이다! 라는 특징적인 건 안느껴지지만, 우리나라 골목의 느낌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일단 색감을 태극기 색으로 그린 센스 보소..
이런 스타일 그림 진짜 좋아한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디테일을 자세히 그리는 그림은 성격상 못그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그림도 결코 얻어내기 쉬운 결과물은 아니라는...
Everything I do is kind of creating information, creating usually images that do someting with what the viewer already knows,
their experience and my experience coming together, and the images are the trigger.
그림을 보는 사람과 그리는 사람의 공통된 경험으로 연결되는 것.
일러스트로 만들어낸 이미지는 연결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연결과 공감, 소통이다.
이미지를 통한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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