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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야사, 그리고 피에르 술라주의 검은 그림들

detail_jy 2023. 8. 2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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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도 출근 전 아쉬탕가 요가 수련을 하러 갔다.

5주째 모닝 요가를 하고 있는데, 몸이 많이 가뿐해지고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오늘은 새로 오신 초급자 분들이 꽤 많아서 본격적인 아쉬탕가보다는 기초 동작, 웜업 느낌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나는 요가를 꽤 어릴때부터 접했다. 꾸준히 한 건 아니고 난이도 있는 동작을 하기 위한 노력을 별로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숙련자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초보자도 아니다. 암튼 최근 모닝 요가를 한달 정도 하니까 전보다 요가를 할 때 동작 간 플로우가 훨씬 매끄럽고 힘이 덜 드는게 느껴진다. 특히, 내가 다니는 요가원 선생님들이 요가 동작을 하며 느껴야하는 부분들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힘을 주고, 어떤 부분에 힘을 빼야 하는지 세세하게 반복해서 알려주니 혼자 수련할 때보다 몸의 감각이 더 정확해지고 내가 자세를 제대로 하고 있구나 라는게 느껴지는게 확실히 있다. 
 
오늘은 초급자 분들 옆에서 수련을 하니 내가 요가를 정말 잘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월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안되는 동작이나 굉장히 힘겨워하는 것을 나는 가뿐히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요가를 하다보면 내가 안되는 동작에 집중하며 왜 난 이것밖에 못하지라고 몸이 안따라주는 자세나 동작을 할때 스스로 비판하기 쉬운데, 내가 요가를 처음 할때와 지금의 변화와 성장을 생각해보면 칭찬해줄 것이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아쉬탕가 요가를 할 떄 빈야사 동작이 많이 들어가는데, 처음엔 굉장히 반복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요가를 조금 더 오래 하다보면 같은 동작이지만 매 빈야사마다 내 몸이 좀 더 가뿐해지고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는게 좀 더 쉬워지는 느낌이 든다.
 
어떤 날은 빈야사가 굉장히 힘들 지만 어떤 날은 가뿐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반복적인 동작을 하며 힘들다고 느껴지기 보다는 이 동작을 하는 나를 관조하고 내 몸의 상태를 관찰하며 수용하게 될 때도 있다. 너무 애쓰지 않고 플로우대로 내 몸을 맡기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어제보다 더 발전된 나로 향해 가는 것.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주는 요가 수련이 요즘 나에겐 참 소중하다. 회사와 대학원 생활을 하며 요 몇년간 요가를 진지하게 하지 못했는데 최근 다시 좋은 요가원과 선생님들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다. 
 
대학원 졸업을 하고 이제 다음은 스텝은 뭐지?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해야하나? 여름동안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됐었다. 
올해의 큰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이제 또 추구해야할 다른 목표를 만들어야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신의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고, 너무 애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는 정체된 느낌이고 뭔가 더 추구해야하나 싶기도 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살고 있는 걸까?
꼭 욕심이 많아야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 들었던 Hidden Brain팟캐스트에서는 반복적인 삶으로 인한 권태 또는 정체된 느낌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팟캐스트 게스트로 출연한 심리학자 아담 알터는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상에서 무엇이 되었든 작은 목표들을 도입해서 행동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목표를 세워라, 생각을 실천해라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나 골백번이고 들은 메세지이기는 하지만 50분짜리 팟캐스트를 들으며 생각할 거리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하고 싶은게 뭔지 찾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충분한 자아 성찰도 필요하지만 무엇이 됬든 관심이 가는 분야를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단위의 행동들을 해봐야 한다. 또한, 요즘은 정보과부하 시대라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가치가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구분하고 판별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너무 많이 쏟아지는 정보에 자신의 중심을 잃거나 휩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선택지가 많아질 수록 집중과 선택이 어려워지는데, 이럴 때는 선택지를 확 줄이고 의도적인 한계 (artificial constraints)를 설정한다면 행동에 필요한 결정들이 한결 쉬워질 수 있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선택지의 폭을 줄이면 매번 고민되는 결정에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많은 자유는 사람들을 행동하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예시로 든 것은 피에르 술라주 (Pierre Soulages : 1919-2022)라는 프랑스 추상회화의 대가의 미술이었다. 술라주는 일평생 검정 물감으로만 작업을 했다. 색상의 선택에서 자유로워지니 그는 검정 물감의 색상 그 너머의 재료의 물성에 집중하고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검정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했다.
 

검정색은 빛에 의해 항상 바뀌기 때문에 단색이 아니다. 검정에는 다양한 뉘앙스가 있다. 나는 검정색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빛을 이용해 작업을 한다. 물감 자체보다는 빛의 요소를 더 많이 이용한다. 

술라주는 한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작업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소중하거나 작가에게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그는 오늘이나 내일 작업할 작품들에 온전히 몰두하며 현재에만 집중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검정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검정색에서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고 했다. (출처)
 
어쩌면 권태에서 빠져나오려면 우리가 늘 똑같다고 여기는 대상들을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주변에 항상 있는 것들은 쉽게 지나치기 쉽고, 이미 파악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더 이상 흥미로울게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가 본질과 뿌리까지 알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그 대상이 평면적이고 지루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호기심과 관심, 충분한 관찰이 결여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일상이 지루하고 똑같이 흘러간다고 느껴질 때 새로운 곳을 가보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외부적인 자극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결국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야하고, 또 일을 하고, 같은 집에서 생활을 해야한다. 평범한 하루와 겉으로는 변한게 없는 환경에서 새로움을 느끼려면 결국 나의 시선이 바뀌어야 하고 눈에 보이는 것 너머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루 하루 내 삶에서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새롭게 보려고 하면 분명 그 대상에 대해서도, 또 나에 대해서도 새롭게 발견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 일상이 따분한 것만 같고 새로운 게 없다고 느껴질때, 오직 변화를 위한 변화만 갈구하게 될 때, 다시 한번 무채색으로만 여겨졌던 검정에서 빛의 요소를 통해 다양한 발색을 이루어낸 피에르 술라주를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 또는 집에서 루틴하게 하는 행동들의 의식적으로 바라보며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 더 효율적으로 하거나 나만의 질서를 부여해본다던지, 꼭 외부에서 자극을 찾지 않고도 내면의 변화를 통해 더 깊은 만족감을 느끼고 싶다.
 
피에르 술라주를 처음으로 알게 해준 이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들은 날 공교롭게도 갑자기 무엇에 이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현재 읽고 있지도 않았던 곰브릿지의 서양미술사 책을 책장 뒷편에서 꺼내어, 책의 아무 위치를 펼쳐 2~3 페이지 정도 읽고 있는데 반갑게도 피에르 술라주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이런 작은 우연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3~4년 전쯤 이 책을읽었을 때는 추상회화에 관심도 없었고 피에르 술라주를 언급하는 파트에서는 아마 별 생각 없이 넘어갔을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의 의식이 확장되니 읽었던 책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추상 표현주의 작품을 여러 점 볼 수 있는 참을성과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이 중 어떤 작품을 좋아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작가들이 추구했던 문제를 점차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국 화가인 프란츠 클라인 (Franz Kline : 1910 - 62)의 작품과 프랑스의 타쉬스트인 피에르 술라주 (Pierre Soulages : 1919-)의 작품을 각기 한 점씩 비교를 했을 때 얻는 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중간 생략) 그러나 내게는 술라주의 작품이 더 흥미롭게 보인다. 그의 힘찬 붓질로 이루어내는 농담법은 3차원의 인상과 물감의 아름다운 발색을 이뤄내므로 내게는 클라인의 작품보다 더 마음에 든다."

- E.H.곰브릿지, <서양미술사>, 백승길, 이종숭 옮김, 예경(2018), p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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