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들/journal

런던 여행, 그리고 라이온킹

detail_jy 2024. 5. 12. 22:31
728x90

동생과 7박8일간의 런던 여행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
 
마지막 런던 여행도 동생과 함께 했었다. 9년전, 나는 학부 졸업을 앞두고, 첫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 직전 겨울이었다. 그때 동생은 런던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었다. 9년도 넘는 시간동안 나에게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나의 의지로 시작되어 삶을 설계해 나감으로 인한 성장선을 그려간 변화보다는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돌며 생긴 의도치 않은 변화들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어떤 좋은 도시를 갔을 때, 다음 번에 방문할 때는 내가 지금보다는 좀 더 멋진 사람이 되어서 와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뉴욕도 그랬고, 런던도 그랬다. 하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듯, 나는 거의 그대로였던 것 같다. 나의 에고가 생각보다 꽤 컸나보다. 에고를 없애고 나 자신을 낮춰가며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는 것이 언제쯤 조금 수월해질까. 
 
이십대 중반의 나는 내가 무엇이든 이룰수 있고 내 앞에는 여러 갈래의 길과 잠재성이 있었다. 
하지만 삼십대 중반에 거의 다다른 현재의 나는 그런 잠재성이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느끼지만,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이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확실히 생겼다. 아직도 꿈을 꾸지만, 이제는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꾸준히 해나가야할지 시야를 좀더 현실적으로 좁히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과 타협하며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며 살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내가 할수 있는 것,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하면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바라보며 일단 나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어 지금 현재 상황이 나를 단정짓는 것이 아니다. 다만 꿈만 꾸면 안되고 지금 꾸준히 무언가를 하면서, 작을지라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한번 느꼈다. 
어릴 때 그렇게 유학, 유학 노래를 불렀는데, 결국 유학을 갈 기회를 스스로 만들지는 않았다. 해외에서 살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그런 단편적인 모습, 그리고 유학을 갔다오면 뭔가 좀 특별한 시야와 작업물을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등 오래가지 않을 욕망들 뿐이었던 것 같다. 유학을 가고 싶은 뚜렷한 동기와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유학을 가기 위한 일을 실행하지 않았다. 행동 없이 그저 바라기만 하는 것은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유학에서 고생할 각오나 정신력이 결여되어있었기에, 갔어도 유의미한 경험이 되지 않을 확률도 높다. 
이번 여행에서는 유학을 안가서 후회된다는 느낌보단, 차라리 가지 않아 다행이었던 것 같았다. 나에게는 유학을 가기 위한 포부나 그릇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 하나님은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때에 보내신다는 것이 맞는 말같이 느껴졌다. 나는 다른 곳에 쓰임 받기 위해,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이번 런던 여행에서는 동생이 유일하게 일정에 포함하고 싶다고 한 라이온킹 뮤지컬을 봤다.
나는 영화와 뮤지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동생이 유일하게 하고 싶다고 한 것이어서 서울에서 미리 티케팅을 해서 보게됬다. 
 
라이온킹은 20여년 전 워낙 여러번 봐서 스토리는 대강 기억하지만 뮤지컬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무파사와 스카 이름도 기억이 안났었는데, 뮤지컬이 시작되며 어릴 때 봤던 장면들이 되살아났다. 
어릴때는 스토리에만 집중했었고 스토리 안에 담긴 깊은 메시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성인이 되어서 본 라이온킹은 여운이 오래 남는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대표 사운드트랙들의 가사도 훨씬 더 잘 들렸는데, 하나하나 인생에서 잘 새겨들어야할 주옥같은 의미들로 가득한 노래들이었다. 
 
특히, 초반부에 심바가 무파사의 말을 듣지 않고 위험한 상황으로 몰려 무파사가 황급히 구해주고 따끔하게 야단을 친 뒤 
심바에게 건네는 말들이 인상 깊었다. 

 

I'm only brave when I have to be.

 
 
심바는 아버지처럼 용맹하고 겁이 없는 사자가 되고 싶어서 무모하게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를 몰아갔는데, 어린 심바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자신은 용기를 내야만 하는 상황에서만 용감하다라고 말한다. 즉,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쏟으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기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용기내어 도전하고 위험을 감수할만한 상황들을 분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자신의 능력이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용기를 내지만, 정작 용기를 내야할 때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데, 이 때 정말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 해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두려움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내가 정말 원하지만 그것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가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 나의 두려움이 집중되어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곳이 정말 내가 용기를 내야하는 곳이 아닐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There's no mountain too great 
Hear these words and have faith 
They live in you 
They live in me
They're watching over 
Everything we see in every creature in every star in your reflection
They live in you 
They live in me 

 
무파사의 노래 'They Live in You'의 가사 중 일부인데, 어릴때는 단순히 멜로디만 기억했는데, 이제 가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껴져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어도, 
내가 겪은 것은 나 말고도 이전의 조상들과 모든 생명체들이 다 겪어본 것이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내 안에 해결책이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는 어려움들을 이미 헤쳐나가본 조상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는 지혜로운 신들이 살아 있다. 
내면을 충분히 돌아보지 않으면 알수 없지만,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답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나의 마음의 소리는 내가 아닌 선조들과 신이 나에게 주는 음성이다. 

그러니 혼자라고 생각말고 믿음을 가지고 내 안의 지혜로운 자들의 말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여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You have forgotten who you are. Look inside yourself, Simba. You are more than what you have become. You must take your place in the circle of life. Remember who you are. 
- Mufasa


죽은 무파사가 하늘에서 심바에게 하는 말이다. 무파사가 보고싶을 심바의 심정에 약간은 슬펐던 기억이 있는 장면이었는데 이 대사의 의미도 생각할 수록 위로되고, 희망적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은 인생을 걸쳐 알아나가야하는데, 보통 우리는 정체성에 한계를 짓고 엉뚱한데서 자아를 내세운다. 나 자신을 쉽게 단정짓고 카테고리화하여 같은 부류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내가 속한 사회를거울삼아 스스로를 만들어가게 되지만 어느순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 삶을 바쳐 쫓아온 것에서 더이상 진짜 나를 찾을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고 나의 일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큰그림을 보지 않고 이 세상에서 나의 역할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게되어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거나, 나의 현 상황과 사회에서의 위치만 보고 이것밖에 하지 못한, 더 성장할 수 있는 사실을 잊고 그 곳에서 안주하거나 스스로를 낙오자라고 여긴다. 
 
너무 한가지의 구체적인 정체성에 나 자신을 가두지 않고, 사회에서 요구하는대로만 살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나아가야할 길을 찾아 현재 몰두할 일을 찾되, 삶 자체는 길게 보고 앞으로 더 뻗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염두해두고 열린 마음으로 내 삶의 경험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고 살고 싶다. 
 
나라는 존재는 절대 혼자 고립되지 않고, 어떻게든 이 우주속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하는 생각과 말 행동이 작을지라도 어떤 곳에는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기 마련이다. 큰 생태계 속에서 작은 벌레 하나도 중요하듯이, 나의 역할이 크진 않을지라도 무엇을 하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처럼 정성을 다해 하고 싶다. 내가 하는 그 일이 마치 나 자신인 것처럼 몰입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나의 시간을 몰두할 만한 일, 내가 진심을 다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도 참 중요하다. 현재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 일에 종사하고 있더라도, 중요하지 않게 여길 것이 아니라 다음 스텝을 위해 이 일도 열심히 해야만 한다. 
 
삶의 방향성을 잃은 것 같을 때, 물질적 풍요로 해결되지 않고 계속 텅 빈 느낌이 들 때, 라이온킹을 다시한번 보는 것 정말 추천한다. 애니메이션 속 대사 하나 하나 곱씹다 보면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