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들/journal

3월의 메모 - 웨인티보 (Wayne Thiebaud) 그림을 보며 든 생각

detail_jy 2024. 4. 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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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티보는 미국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과 풍경들을 과장된 색감과 음영으로 표현한 팝아트, 리얼리즘 미술로 분류되는 작가이다. 실제로 봤더라면 칙칙하거나 그다지 컬러풀하지 않을 수 있는 일상 사물에 웨인티보 특유의 밝고 생동감 넘치는 색감을 입혀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다.


웨인티보의 그림에 자주 등장했던 케익과 아이스크림 등은 대중적인 디저트로 어느 상점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이다. 당시엔 아무도 흔한 케익을 소재 삼아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케익 그 자체가 이루는 형태가 예술처럼 느껴져서 그리기 시작했고, 그리면 그릴 수록 이제까지 못보고 지나쳤던 다양한 형태와 조형을 발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파스텔 핑크톤, 오렌지, 하늘색 등을 잘 써서 꿈속 광경 같은 느낌이 들기도하고, 희망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나도 그림을 취미로 그리지만,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소재 삼아 그려야할지 고민일 때가 많다. 새로운 사물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에 있는 사물들을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웨인티보 처럼 정물을 그린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 속에는 특별히 대단한 소재를 찾으러 다닌 흔적 보다는 대체적으로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꽤 쉽게 접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풍경을 소재로 그린 경우가 많다. 좋은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자체보다 그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작가의 의도가 있어야 한다.
어떤 사물과 풍경이던, 그 것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사람의 존재가 없다면 의미가 생길 수 없다. 사람 또한 살면서 내가 인식한 것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고 빠르게 흘러보내면 당연히 그 사물/풍경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것도 없고, 내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 진다.

무언가 제대로 관찰하면 처음에 받았던 인상과 달리 새로운게 보일 수 있고, 나의 감정상태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도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흥미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모든 사물에는 내재되어있다. 그런면에서 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각자의 스토리와 역사가 있어, 제대로 그 사람을 알려고 하면 평면적으로 보였던 사람이 입체적으로 보이며 흥미로워질 수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의식적으로 알려고만 한다면 말이다. 영감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은 관찰의 부재일 가능성도 높다. 의식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끊임없이 내 주변을 관찰할 때 비로소 나타난다. 세상 사물의 본질과 아름다움, 마음으로만 자신을 보여주는 것들은 오직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에게만 보상처럼 보여주는 것같다.

물리적으로는 그렇게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 그렇게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줌으로 인해, 표현 수단의 갈고 닦음을 통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그림이란 결과물이 얻어지는 것이다.

아무도 유심히 보지 않는 것들, 평범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마음과 눈을 열어 관찰하면 물리적인 형태 이면의 특별한 것들을 목격 할 수 있다. 시간과 관심을 기울일 수록 대상은 더 특별해지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서서히 나타내는 듯하다. 제대로 보려 하지 않고 피상적인,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들을 ‘나’ 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기존의 다른 사람들의 표현한 것을 빌리게 된다.


웨인티보는 가지런히 놓여진 디저트 접시, 쇼윈도의 집기 등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조화와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사물의 표면에 맺힌 도시의 빛과 다채로운 색을 보았다. 그림속 사물들은 마치 도시에 사는 화려하지만 조금은 쓸쓸한 사람들 처럼 느껴진다. 컬러풀하고 눈에 띄게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포장일 뿐이기에 영원하지 않고 금방 없어지는 것들에 의지하며 살아갈 때도 많아 가끔은 위태롭거나 불안한 사람들.


요즘 같이 모든 것이 빠른 시대에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것이 아릅답다고 당연스레 받아들여지고, 자신이 스스로 발견한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일이 줄어드는 것 같다. 외모, 옷차림 등으로 아름다움을 표시할 수는 있지만 계속 보다보면 감각이 무뎌진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내 바깥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같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 안에 늘 있다는 말을 조금씩 이해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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