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내 눈에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낸 사람들은 그 길에 다다르기까지 어떤 구체적 단계를 거쳤는지,
무엇을 전공했고, 몇 살 때 무엇을 했고 등등에 관심이 많았다. 나도 그렇게 비슷하게 되려면 뭐부터 해야하고 지금 어떤 걸 하고 있어야하며, 만약 내가 그 전공을 공부하지 않았거나, 그들처럼 어린 나이에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쉽게 포기했었던것같다.
그만큼 그 일이 절실하지 않았고, 그 사람들의 현재의 결과물만. 보이기 때문에 지금을 있게 해준 고된 날들, 험난한 길은 생각하지도 않고 내가 실제 원하는게 맞는지 깊은 성찰을 하지 않고 단순히 멋져보인다를 ‘나도 하고 싶은 일‘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이 그 길로 가기까지 걸어온 길들은 자신만의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형식적인 것들은 따라할 수 있겠지만, 어떤 분야든 어떤 경지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누가 알려준대로, 정해져있는 단 하나의 루트를 찾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만 너무 집중하면 본질을 잃기 쉽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여러가지가 될 수 있으며, 단 하나의 길만 있지는 않다. 단지 현재 상황과 맥락에서 가장 최적의 방식을 선택할 뿐이다. 그 길은 오직 나만이 찾아나서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참고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을 하기 위해 굳은 결심을 내렸는지이다. 결심을 했다면 나 스스로 길은 어떻게든 찾게 돼있다. 정답은 없다.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아무리 흔치 않은 방식이어도,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우주가 돕는다. 그러니 외부의 환경 탓, 참고할만한 길 안내서, 스텝 바이 스텝 설명서가 없다고 쉽게 포기한다는 것은, 애초에 내가 그 일을 간절하게 원했는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서 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 검색 몇번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의견, 다른사람의 경험담, 본질은 빠져 있는 단순히 효율적으로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찾을 수 있다. 시간을 오래 들이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의 노하우를 찾아볼 수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길 요구되는 상황은 점점 더 없어져만 간다. 의식적으로 스스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매 순간을 타인과 사회에 의해 알게모르게 영향을 받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능력을 계속 상실해가고 있다.
이루기 어려운 목표일수록 자꾸 시험에 들고, 길도 여러 갈래로 나뉘고, 끝없는 자기 의심으로 지쳐 나가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 했던 길이 잘못된 방향일 수도 있다. 스스로 생각함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시간과 경제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당연히 피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사소한 것도 아닌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에도 남은 어떻게 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나만의 이야기가 없어진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면서 새로운 것을 마주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기반해 내린 의사결정들, 의미 창출 등을 통해 스토리가 있는 결과물이 된다. 하지만 결과물의 외형만 중시하여 다른 사람들의 방식 그대로만 하면 자신만이 가진 독창성을 표현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사소한 것 부터 남의 기준을 따라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요즘 같은 시대에 점점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안도 타다오는 한 인터뷰에서 독학으로 건축을 배우는 것과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시마다 아쓰시. 디자인하우스. 2003)
“독학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독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 좀 난감해요. 그래서 굳이 독학을 내세워 얘기하기는 좀 그렇군요.”
“독학이란 타인에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각자가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니까 독학인 겁니다. 즉,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거기엔 노하우란 게 없어요. ‘어떻게’가 없는 것이 독학인데, 그 방법을 듣고 배우려 한다면 잘못이 아닐까요. 인간은 모두가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으니까 제 방식을 들어봐야 아무 의미도 없지요. 학교 교육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가르치지만 제 경험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니까 별 도움이 안 될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제 말을 듣고 그대로 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겁니다.”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는 책임 또한 방기 됩니다. 건축이란 결정하고 선택하면서 진행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에 넘치고 있는 획일적이고 표면만 아름다운 건축에는 그 결정이란 행위에 반드시 동반되어야하는 책임이 누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집단에서 결정을 하기 떄문에 그렇겠죠. 개인이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기능과 경제성을 바탕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역할 분담 속에서 책임 소재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건축계만의 일이 아닙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얘기일 겁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주위와 똑같은 코스를 밟도록 강요해 온, 융통성 없는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일직선인 교육과정에서 스스로 뭔가를 생각한다면 , 그야말로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교육받은 것을 효율적으로 습득하는 능력만 숫자화된 결과로 나타나니까요. 오늘날의 학생들은 그런 훈련만 받은 덕분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어졌습니다. 잘 모르는 것은 매뉴얼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해결하지 못하는 등, 사고력이 아주 빈약하죠.”
“젊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인간은 다르므로 각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지금의 학교 교육은 생각하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말이죠.”
“건물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반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건축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건물을 만드는 것하고는 다른 차원의 얘기죠. 제가 축하는 새로운 ‘대화’는 순조롭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딪치는 것이고, 매끄럽지 못한 것입니다. 이리저리 우회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는 중에 새로운 발견을 합니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먼 길로 돌아가면서 자기 스스로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국 똑바로 난 길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그의 연구 ‘하위문화들의 모자이크’에서 거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고 개개인이 확연히 구별되지 못하는 획일적인 사회에서 편의주의라는 이름으로 나약한 성격이 되어가는 점을 언급했다.
“현재 거대 도시에서는, 세부적인 면에서는 다르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항상 타인에게 의지하며 타인에게 불쾌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스스로 서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에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해야하기 때문에’라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타인과 잘 지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받아들이거나 자립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타인과의 마찰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행동들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편의 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나약한 성격을 옹호하기는 쉽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변명을 늘어 놓아도, 결국 나약한 성격은 개인을 파괴한다. 성격이 나약한 사람은 누구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또한, 나약한 성격이 만들어내는 자기혐오는 온전한 개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
“현대 사회에서의 각 개인은 그야말로 자신들을 둘러싼 복잡한 가치들로부터 스스로 자아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매일 조금씩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어떤 일을 할 때, 설령 같은 행동일지라도 그 행동에 대한 이들의 반응이 각각 다르다면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정확히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지, 자신에게 안심하고 확신을 갖게 하는 가능성은 급격하게 낮아진다고 할 수 있다. 사회의 예기치 못한 변화에 끊임없이 직면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할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없으며, 더욱 더 다른 이들의 동의를 추구하게 된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 빅터 파파넥. p29
“동전을 만족스럽게 배열하는 데에는 무한한 방법이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방법보다 나은 방법은 있을지 몰라도 어느 한 방법만이 올바른 디자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문제-해결 활동으로서의 디자인은 그 정의상 오직 한가지의 옳은 답만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항상 무수한 해답을 제시하고 거기에는 다만 ‘조금 더 옳거나’ 혹은 ‘조금 더 그른’ 해답이 있을 뿐이다. 모든 디자인 해결책의 ‘타당성’은 우리가 그 배열에 부여하는 의미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무엇을 하던, 자신의 목소리에 가장 귀기울이고 스스로 신뢰하여 문제 해결 방식에 있어서 나만의 방식을 선택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야겠다.
'wr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홈메이드 다목적 세정제 만들기 (친환경 청소 클리너 with 닥터브로너스 퓨어캐스틸솝) (0) | 2023.08.13 |
---|---|
책은 사도 사도 또 사고 싶어 (0) | 2023.07.21 |
하루의 다양한 생각들 (0) | 2023.07.07 |
친환경 운동화 브랜드 SAYE, 토마토 씨앗 발아 시키기 (0) | 2023.07.02 |
journal.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노력 (0) | 2023.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