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추천을 통해 알게 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KBS 다큐멘터리를 봤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빠른 사이클로 제품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폐기되는 요즘의 패션 업계가 환경에 주는 심각한 피해에 대해 다룬 다큐였다.
2000년대중반부터 SPA 브랜드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트렌디한 옷을 저렴한 가격에 다양하게 입을 수 있다는 어필은 강력했고, 나 또한 가끔 SPA 브랜드를 사 입었다. 사실 저렴하니까 몇번 입다가 맘에 안들면 버리고 또 새로 사입고 하는 것이 비싼 옷을 사는것보다 합리적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spa 브랜드가 저렴한 단가로 대량생산을 하기 위해 후진국 의류 공장들에 가격 경쟁을 부추기고, 비용 절감하느라 다 무너져가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옷을 봉제하다 사망하는 등의 이슈에 대해 인지하고는 있었다. 의류대량생산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생산 비용 절감에는 한계가 있고, 빠르게 유명브랜드의 스타일을 카피해 시장에 내놓는 제품에는 딱히 브랜드 철학이나 디자인 의도 같은 것들이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로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것도 어렵다.
한 때 나도 SPA 브랜드를 보유한 의류회사에서 공급관련된 업무를 잠깐 경험한 적은 있어서 업계의 지속가능하지 않은 현실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는 정말 다시는 자라 매장 근처에는 가고 싶지 않을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의류 폐기물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다큐에서 활용하는 자료에 의하면 많은 의류 소비자들이 평균적으로 옷을 사면 폐기하기 까지 7번정도 착용한다고 한다. 구매부터 폐기 까지의 기간은 제각각이겠지만 요즘 전반적으로 옷의 수명이 많이 짧아진 것이 포인트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비 인증, 패션스타그램, 옷스타그램 뿐만 아니라 일상, 여행 사진 등에서도 보통 자신이 나온 사진을 올리고 싶은 욕구 때문에, 매번 같은 옷을 입고 찍을 수 없으니 다양한 착장이 필요해진 것도 있다. 나같아도 소셜미디어를 많이 한다면 매번 새로운 옷을 입은 사진을 올리고 싶을 것 같다. 실제 다큐에서도 20대 인터뷰이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위해 옷을 산다고 이야기하고 한번 입기 위해 구매하기도 한다고 한다.
SPA브랜드 뿐만 아니라 개인 자체제작, 동대문바잉 상품들이 브랜드화되어 다양한 커머스플랫폼에 우후죽순 올라온다. 요즘은 또 이커머스 UX가 굉장히 고도화되어 쇼핑하는 것도 SNS하는 것처럼 재밌고, AI 기반으로 내 취향에 맞는 제품들을 추천해줘서 쇼핑할 맛이 난다. 구매 과정에서 사용자가 조금의 마찰도 느끼지 못하도록 앱 사용성은 또 얼마나 좋은지, 배송도 빠르고 반품도 용이한 편이고, 손 하나 까딱하면 적당한 가격의 옷꾸러미들이 현관 앞에 도착하니, 이정도면 옷쇼핑을 하지 않는게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낟.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옷을 많이 산다. 쇼핑은 자유고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지만 문제는 몇번 입지 않고 폐기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폐기 처리 시스템이 이 많은 양을 다 소화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다큐에 의하면 한국에서 폐기되는 의류중 5%만이 중고로 유통되고 95%가 방글라데시나 가나 같은 후진국 (정확한 국가는 다큐에서 확인할수있다) 으로 폐기물로 수출된다고 한다. 결국 힘들게 생산되서 온갖 유통과정을 겪고, 몇번의 착용후 다시 생산국으로 폐기되어 돌아가는 것으로 보여졌다. 다큐에서 비춰진 바로는 그런 후진국의 강가 주변에는 산더미 같은 옷들이 갈 곳이 없어서 그냥 쌓여 있다. 후진국 내에서도 열리는 중고 의류 장터가 있지만 대부분 팔리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옷들이 대부분이라 그 나라들에서도 소화가 어렵다. 또한 그렇게 버려지는 옷들 중 대부분은 플라스틱 재질과 동일한 폴리에스터같은 합성섬유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썩지도 않는다.
다큐를 보면서 그런 나라들에 사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전세계에서 쉽게 사고 입고 아무생각 없이 버린 쓰레기 옷들을 짊어지고 살아가야하는걸까.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야윈 소가 강 주변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데 입에 물고 있는 건 옷 조각이었다. 옷 쓰레기들이 넘쳐나 강이나 바다 같은 곳에 둥둥 떠다니기도 하는 장면도 있었다.
나중엔 정말 감당하지 못해 옷 폐기물을 받아주는 후진국들을 벗어나 선진국에서도 옷더미 속에서 살아가게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옷을 더 많이 사도록 부추기는 패션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유행을 많이 타는 옷을 줄인다던지, 대량생산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하기 위한 폴리에스터 같은 저렴한 소재개발 보다는 지속성이 좋고 생분해가 되며 입을 수록 퀄리티가 더 좋아지는 신소재 개발을 한다던지 ;; 아니면 옷의 생애주기를 늘리는 방법을 위해 옷이 어떻게 버려질지, 버려진 옷은 어디로 가야할지, 지구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 라이프사이클의 마지막 단계까지 생각한다던지.. 무조건 기업의 수익성만 고려해 많이 팔면 장땡인 패션업은 이제 정말 매력없다.
비슷비슷한 패션 브랜드들의 브랜딩을 보면 이젠 별로 공감도 되지 않고 멋스러워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는데 정말 많은 노력이 들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것은 알지만.. 몇번 입고 버려질 옷을 단순히 사업성이 좋아 판매하기 위해 존재하는 또 하나의 브랜드가 세상에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이든다.
나도 옷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나한테 맞는 좋은 옷을 사서 오래 입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차피 지금 사려고 고민하는 옷도 사고 난 후 두어번 입으면 질릴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옷은 내일도 다음달에도 나온다. 다른 사람이 입고 찍은 예쁜 옷은 진짜 예쁠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배경을 잘 연출했고, 잘 코디했고 그랬기 때문에 예뻐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나에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패션커머스에서 옷구경을 하다 사고 싶어지는 옷이 있으면 장바구니에만 넣는 것만으로도 구매한 것 과 비슷한 심리적 효과가 있다. 실물만 나한테 오지 않았을 뿐. 옷 사려는 욕구를 자제하는 좋은 방법이다. 몇일 후 장바구니 목록을 보면 다시보니 필요하지 않은 제품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장바구니 정리를 한번 하고 난 후 또 얼마 후에 다시 추려진 장바구니를 봐보자.
처음 그 제품을 마주쳤을 때와의 감정은 이미 많이 사라져있을 것이다.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쿠폰과 푸시 알림의 유혹도 이때쯤이면 효과도 없다.
그렇게 장바구니를 몇번이고 추려낸 상품 중에 정말로 사고 싶은 옷이 있다면 그 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요즘 이렇게 장바구니를 걸러내고 결국 사지 않고 장바구니가 비워진 경험을 많이헀다. 결국 저렴한 가격으로 살수 있는 옷들은 잠깐의 충동으로 구매하게 되는경우가 많고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가치를 충분히 주고 있진 않다.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많은 영향을 받아서인것도 있지만, 나는 이후 스마트폰에 깔려있던 패션 커머스 앱을 전부 삭제했다.
커머스앱에서 산 옷이나 신발치고 엄청 맘에 들었던 경험도 손에 꼽히기 때문이다. 상품을 받고 사이즈가 안맞거나 불량이 아닌 이상 귀찮고 반품배송비가 아까워서 그냥 두는게 많지 만족도는 떨어진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 새로운 옷이 입고 싶어질 때 생각나서 키고 구경하는데 시간낭비한 적도 많다.. 그래서 그냥 삭제하니 접속할일도 없고 마음편하다. 돈벌어서 좀 더 좋은 옷, 오래 입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산다면 옷을 더 소중히 대하는 마음, 아껴 입는 마음이 더 커져 옷의 수명도 길어지고 선순환인것같다. 생산부터 브랜딩, 유통, 소비까지 친환경적 마인드를 가진 브랜드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진다. 소재 염색 공정 자체도 환경에 매우 안좋다고 한다. 환경에 무해한 천연염색 재료, 물을 덜 사용하는 의류 제조 공법 등 환경을 위해 고민한 브랜드는 그만큼 생산하기가 까다로워 소비자가가 비싸지긴 하겠지만.. 그만큼 옷 사는 빈도수가 줄어들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것을 생각하면 더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옵션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글이 될 수도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모든 사람들이 꼭 한번쯤 보고
의류 소비 패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다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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